어두운 바다 위 외로운 등대처럼, 어두운 세상 속 한 줄기 빛이 되길 꿈꾼다.
그런 바람을 작품에 녹여내어 ‘손등대’로 재탄생시킨다.
바다 쓰레기로 업사이클링을 실천하는 이혜선 작가의 이야기다.

writer. 임지영 photographer. 이도영

작품에 다양성을 더하기 위해 선택한 ‘가지 않은 길’

모든 것의 기원과 존재는 우연에 의한 것이지만, 우연에서 탄생해 필연으로 포섭되고 도출되는 것들이 있다. 금속공예가에서 업사이클링 작가로 변신한 이혜선 작가의 작품 세계처럼 말이다.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한 이혜선 작가는 본인의 작품에 ‘다양성’을 더하기 위해 늘 고민을 거듭했다. 막연하게 품었던 바람은 우연한 기회에 현실로 다가왔다.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환경 단체인 ‘재주도좋아’와의 인연이 그 시작이었다.
“‘재주도좋아’에서 금속공예가들과 함께 바다 쓰레기를 주제로 한 <제주바다로부터-바다쓰레기 금속공예 그룹 전시>를 기획했어요. 그 과정에서 제게도 전시회 참여 제안이 왔고요. 플라스틱으로 된 바다 쓰레기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소재를 다룰 기회를 얻게 된 거죠.”
처음에는 그저 ‘흥미롭겠는걸?’이란 마음뿐이었다. 바다 쓰레기에 대한 지식도 정보도 전혀 없었다. 기존에 다루지 않았던 ‘금속이 아닌 소재’가 주는 즐거움은 꽤 컸고, 거리낌 없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작업 과정은 ‘호기심 천국’ 그 자체였고,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여운은 짙게 남았다. 차갑고 단단한 물성의 금속이 아닌 다양한 촉감과 질감의 다른 소재와의 인연은 작품 활동에도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쓰레기를 줍는 일부터 분류하고 세척한 뒤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전 과정이 흥미로운 일상으로 다가왔다. 물론 다양한 바다 쓰레기를 수집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거나 소재를 다루는 게 수월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맺은 바다 쓰레기와의 인연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져 ‘업사이클링 작가’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부여해 주었다.

등대가 어두운 밤바다를 훤히
비추는 존재이듯 어둠을 밝히는
손안의 등대라는 뜻에서 ‘손등대’를
만들었어요.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의 의미, 가치와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어두운 밤바다 비추는 등대 같은 작품 만들고 싶어

“공예의 특징이 ‘기능’에 있다고 생각해요. 쓸모를 다 하고 버려진 쓰레기를 재료로 삼으면서 또다시 버려질 것을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바다에 버려진 다양한 종류의 쓰레기 중 그가 가장 많이 다루는 소재는 부표다. 바다 쓰레기 중에서도 이를테면 페트병 등은 재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리사이클링 소재로 분류되어 처리된다. 하지만 부표는 다르다. 세계 각국에서 버려지는 쓰레기인 동시에, 소재 표기가 되어 있지 않아 리사이클링이 불가능하다. 그가 부표에 주목한 이유다.
7년간 작품 활동을 이어온 그녀의 ‘최애’ 작품은 바로 2016년 전시회 출품작인 ‘손등대2’다. 독일에서 열린 공모전에 출품해 2등이라는 성과를 거두는가 하면 개인전을 개최한 첫날 첫 번째로 팔린 의미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등대가 어두운 밤바다를 훤히 비추는 존재이듯 어둠을 밝히는 손안의 등대라는 뜻에서 ‘손등대’를 만들었어요.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의 의미, 가치와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첫 프로젝트 이후 해변을 청소하는 *‘비치코밍’은 일상이 되었다. 친구들이나 주변의 지인들이 여행 중에 발견한 해양 쓰레기를 수집해 보내주는 경우도 있고,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여럿이 비치코밍을 다녀온 적도 있다. 의도치 않았지만 비치코밍 같은 환경 정화 활동을 전파하고 있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비치코밍을 통해 ‘해변을 빗질하며’ 얻은 해양 쓰레기의 대부분은 바다를 떠돌며 파도에 부서지고 돌과 모래에 부딪혀 마모되기도 하며 햇빛에 바랜 모습을 하고 있다. 이혜선 작가는 그런 모습조차 작품의 일부라고 말한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존재에 인위적 가공을 가하지 않는 이유다.
“흔적도 하나의 이야기로 남겨 두고 싶거든요. 서로 대비되는 모습으로 전체적인 작품의 밸런스를 맞추는 한편, 활용된 해양 쓰레기의 세월이 가감 없이 드러나도록 하고 싶어요.”
수많은 종류의 해양 쓰레기들을 재료로 사용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는 소중한 자산이다. 업사이클링은 아주 정교한 계획을 전제로 했다. 부표 속이 비어있는 줄 알고 잘랐다가 내부 구조가 생각보다 복잡한 걸 보고 계획을 수정한 것 같은 경험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작업 중 생각보다 많은 조각이 나오는 걸 보고, 그것들을 버리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보다 섬세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비치코밍 : ‘해변’을 뜻하는 beach와 ‘빗질하다’를 뜻하는 combing의 합성어

버려지는 물건, 그 속에서 가치를 찾다

‘쓰레기로 만든 작품’에 대한 시선이 항상 곱지만은 않다. ‘그래봤자, 이거 쓰레기로 만든 거잖아?’라는 말을 서슴없이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 쓰레기는 거부감 없는 재활용품일 뿐이다. 버려진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어릴 적부터 봐왔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누군가 길가에 버리고 간 물건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분이었다.
“나에겐 필요 없지만 누군가에겐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철학을 가지셨던 분이세요. 그렇게 가져온 물건들은 다시 새로운 쓸모와 용도를 가지고 새 삶을 살기도 했고요. 어릴 때는 몰랐어요. 어머니께서 해오신 그때의 그 활동 하나하나가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었다는 사실을요.”
버려진 청바지와 앞치마는 어머니의 손길을 거쳐 데님 배낭이 되고 작은 손가방이 되었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던가. 이혜선 작가는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많이 닮았다. 버려진 것들을 쓰레기로 보지 않고 그 속에서 가치를 찾는다. 얼마 전에는 버려진 의자를 주워 와 지저분한 부분만 사포로 갈아내고 작업실 의자로 사용하고 있다. 모든 것은 순환한다. 자원도, 가치도, 삶도 말이다. 올해부터는 제주도 해변에서 해변 정화 자원봉사를 하는 ‘제주클린보이즈클럽’과 연이 닿아 협업하고 있다. 새로운 인연과 새로운 순환이 즐겁기만 하다.
“이전에는 봉사 단체에서 주운 쓰레기들을 분리해 버리는 것으로 끝났다고 해요. 이번에는 좀 달라요. 이런 기회를 통해 쓰레기에 새로운 쓸모를 줄 수 있게 되어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
아무도 보지 못하는 ‘쓸모’를 발견해 폐기 처분된 것들에 새 심장을 이식하고 싶다는 이혜선 작가. 환경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담아 작품 활동을 하지만, 여전히 환경운동가, 환경아티스트 등으로 불릴 때면 호칭에 대한 반성이 앞선다. 그런 그의 꿈은 지금까지 작업해 온 조명, 풍경, 모빌 등 작은 크기의 작품에서 벗어나 대규모의 작품을 만들고, 만들기 키트 등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운’ 업사이클링 경험을 선물하는 것이다.
“업사이클링을 무거운 책임이나 의무가 아닌, 즐거운 체험이자 일상으로 느꼈으면 좋겠어요. 미미하지만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해 그런 선한 영향력을 전할 수 있었으면 해요. 결국 손등대가 비추는 길은 우리가 환경을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