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풍속화가 본격적으로 그려진 것은 17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로서 특히 영·정조 연간에 절정을 이루었다. 여기에는 17~18세기 풍속화의 선두주자로서 선비화인 공재 윤두서와 조영석이 있었으며, 뒤를 이어 단원 김홍도와 긍재 김득신, 혜원 신윤복은 화원 화인으로서 개성미 넘치는 회화 세계를 펼치며 풍속화의 꽃을 피웠다. 여기서는 긍재 김득신(兢齋 金得臣, 1754~1822)의 작품 중 그의 개성과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출문간월도(出門看月圖)>를 통하여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더듬어 보고자 한다.

정조가 뽑은 최고의 화원

긍재는 화인의 명문 출신답게 10대 때 이미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이 궁중 기록에 처음 나타난 것은 1772년의 [육상궁시호도감의궤(毓祥宮諡號都監儀軌)]로서 긍재 나이 겨우 19세였다. 이후에도 의궤에 모두 19회나 그의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임금을 비롯한 왕실과 신하들의 신임이 매우 두터웠던 것으로 보인다. 친정체제가 확립된 정조는 1783년 규장각 내에 화원을 둘 수 있도록 [응행절목(應行節目)]이란 예규를 제정하고 이에 따라 자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을 발탁하였다. 자비대령화원은 정원이 10명으로, 도화서 화원을 상대로 한 엄격한 공개 시험을 거쳐 긍재가 당당히 초대 자비대령화원으로 선발되었다. [시경(詩經)]의 시경(詩境) 가운데에서 화제가 출제되었는데 긍재는 [빈풍칠월도]의 한 소재인 ‘돼지와 개’를 그려 영모를 그린 이인문 등의 다른 화원들을 제치고 최고 점수인 ‘이하(二下)’를 받은 기록이 나온다. 이러한 최고 평가를 아홉 번이나 받았으니 그의 솜씨가 당대 화인 중 최고 수준이었음을 잘 알 수 있다.

일류 화원의 능숙한 필치로 담아낸 시의화(詩意畵)

은은한 청회색(靑灰色) 바탕의 화폭에 오동나무 한 그루가 화면 한 가운데 우뚝 솟아 있다. 외진 산촌에 있을 법한 초옥 한 채가 덩그러니 서 있고 그 앞에는 동자와 삽살개 한 마리가 밤하늘의 밝은 달을 무심히 쳐다보고 있다. 무성한 오동잎과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볼 때 여름에서 막 초가을로 접어드는 절기로서 조금은 선선한 바람이 나뭇잎 사이로 이는 듯하다.
넉넉한 어깨와 튼실한 몸매를 가진 동자아이는 더벅머리에다 굳게 다문 입 모양에서 매우 충직한 성품을 가진 사내로 짐작되며, 바둑이 문양에다 짧은 털의 삽살개는 뾰족한 입 모양과 날카로운 눈매, 쫑긋 선 귀 모양에서 아주 영특한 모습을 취함으로써 오동나무를 가운데에 둔 채 매우 재미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 마리 개가 짖자, 두 마리 개가 짖고
만 마리 개가 이 한 마리 개를 따라 짖네
동자를 불러 문밖으로 나가 보라 하니
달님이 오동나무 제일 높은 가지에
걸려 있다 하네
(一犬吠 二犬吠 萬犬從此一犬吠
呼童出門看 月卦梧桐第一枝
)

어릴 적 고향마을에서 한밤중에 이웃집 개 한 마리가 짖으면 다른 집 개들도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덩달아 짖어대던 장면이 아득히 떠오른다. 이 글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경전(李慶全)의 글을 각색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남의 일에 사유도 모른 채 함께 휩쓸리는 사람들의 세태를 풍자하는 뜻도 함께 하고 있다. 이렇듯 능숙한 먹의 농담 운용과 적절한 운필의 완급 조절, 흉중의 뜻을 화폭에 옮기는 솜씨와 완벽한 채색에 이르기까지 왜 그가 조선 후기 화원 중 최고 경지의 한 사람으로 칭송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집안의 영예를 잇다

조선 후기의 쟁쟁한 화원 가문의 명예를 안고 태어난 긍재는 40여 년을 화원으로 묵묵히 봉직하며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다복한 화원 집안의 내력은 그의 아들 건종(建鍾), 수종(金秀鍾), 하종(夏鍾)에게 이어져 이들 셋 다 화원으로 봉직했을 뿐만 아니라 친·외가 5대에 걸쳐 20여 명의 화원을 배출한 독특한 가풍을 남겼다.
초가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창덕궁 부용지에는 주합루의 아름다운 누대(樓臺)가 수면에 비치며 오늘도 고요히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손끝이 다 닳도록 평생을 화인으로 살아온 긍재 김득신. 군신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그들 동시대인의 희로애락을 담아낸 주옥같은 그의 작품은 대장간의 힘찬 풀무질 같은 진한 울림으로 남아 오늘날까지도 벅찬 감동을 전해준다.

긍재 김득신의 <출문간월도(出門看月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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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재 김득신의 <출문간월도(出門看月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