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철도문학상
장려상 수상작
기차의 온도
언제 출발할까? 출발은 했을까?
서울에 정착해 작은 회사 경리로 근무하는
딸은 이제 서른 살
아직 짝을 만나지도 만날 생각도 없다는 딸은
기차표를 끊었다는 말이 전부다.
문자를 보내도 눈이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는 내게
전화를 걸어
짤막하게 <기차표 끊었어.> 이 한 마디가 전부다.
내가 키울 때 뭘 그리 서럽게 만들었을까.
살면서 내가 뭘 그리 서운하게 했을까.
살갑지 않은 딸이 딸깍 전화를 끊을 때 내 가슴이 덜컹거린다.
언제, 언제 표야. 몇 시 도착이야.
물어도 되는데 나는 그저 온다는 말만 가슴에 품고
응, 응, 대답만 무심코 계속 했지
마디마디 파랗게 싹이 돋는 이 봄날
두려움 없이 세상에 제 이름 석자 새기며 살기를 바라는 딸이 온다.
떠난 지 3년,
제 어미 보러 온단다.
만나면 먼저 용서를 구해야지. 미안하다고 말해야지.
무엇인지 모를 거칠고 아픈 기억에 대해 그냥 무조건 빌고 빌어야지.
그게 어미가 아니겠는가.
컵라면, 삼각 김밥 먹는 청년이 텔레비전에서 나오면
주린 배를 채우고 있는 딸아이 모습이 겹치는 게 어미가 아니겠는가.
얼른 밥을 지어야지. 어릴 때 맛나게 먹던 시래기도 지져야지.
언제 올지 모를 딸아이가 탈 기차의 온도는 몇 도일까.
부디 상처 없는 등불을 품고 따뜻한 기차에 몸을 싣고
그래 도착하기를, 어서 오기를.
2024 <철길로 미래로>는 제9회 철도문학상 공모전 수상작들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