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패션의 등장은 우리의 쇼핑 문화를 바꾸고 패션 산업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하지만 지구와 공존하지 않는 패션은 영원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지속가능한 패션’으로 가는 길을 모색 중이다.

writer. 전하영

세상에 없던 소재,

플라스틱의 탄생

플라스틱은 가볍고, 저렴하고, 내구성이 좋으며, 색상과 형태를 다양하게 변형할 수 있는, 독특한 성질을 가진 재료다. 플라스틱은 자연에 존재하는 유기물질인 셀룰로스를 화학적 으로 변형해 만든 ‘최초의 인공재료’였다. 19세기 후반, 당구공, 머리빗, 단추 등에 쓰이던 ‘코끼리 상아’를 대체할 물질을 찾고자 플라스틱을 개발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당시 언 론은 연간 상아 소비량이 최소 450톤이 넘어 이대로 가다가는 코끼리가 곧 멸종할 것이 라 보도하곤 했다.
플라스틱은 1862년 영국의 화학자 알렉산더 파크스에 의해 처음 탄생했다. 파크스는 셀 룰로스와 질산을 섞어 투명하고 유연하며 가열하면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재료를 만들었 다. 이 재료는 ‘파크신(Pakesine)’이라 불렸다. 파크신은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이었지만, 제조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높은 데다 품질이 일정하지 않아 상업화에는 성공하지 못 했다. 플라스틱의 상업적 성공을 이룬 것은 1907년 미국의 화학자 리오 베이클랜드였다. 그는 페놀과 포름할데히드를 반응시켜 경질의 내열성이 뛰어난 재료를 만들었다. 이 재료는 ‘베 이클라이트(Bakelite)’라 불렸으며, 세계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이었다. 즉, 자연에 존재 하지 않는 화학 구조를 가진 재료로, 전기용품, 전화기, 라디오 등에 널리 사용되며 플라 스틱 산업의 시초가 되었다.
플라스틱(plastic)의 어원은 희랍어 ‘plastikos’에서 유래한 것으로, ‘조형이 가능한’ 또 는 ‘금형으로 가공이 가능한’의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원하는 모양으로 가공이 가능한 물 질을 뜻한다. 플라스틱은 튼튼하면서도 금속, 유리, 목재 등 다른 소재들에 비해 다채롭게 변신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플라스틱의 전성기,

2차 세계대전

플라스틱은 20세기에 급격하게 발전했는데, 특히 2차 세계대전은 플라스틱의 전성기를 이끈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금속, 고무, 유리 등 기존 소재의 공급이 어려워지자 플라스틱이 그 자리를 대체해 전쟁 용품의 주요한 재료로 급부상했다.
전쟁 기간 플라스틱은 다양한 곳에 폭넓게 사용됐다. 비행기의 도장과 창문, 낙하산의 섬 유, 탄약의 케이스, 헬멧과 신호탄 등 많은 곳에 플라스틱이 필요했다. 플라스틱은 전쟁 용 품의 무게를 줄이고, 내구성을 높였으며, 생산성을 향상시켰다. 어느새 플라스틱이 전쟁 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전쟁이 진행되던 1939년에서 1945년 사이 플라스틱의 생산량은 약 4배가 증가했다. 전 쟁이 플라스틱 대량생산의 기반을 만든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플라스틱의 전성기는 계속됐다. 전쟁 후 플라스틱 제조 업체들은 계속해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더 다양한 곳 으로 눈을 돌렸다. 플라스틱으로 인형과 장난감을 만들기도 하고, 가정에서 늘 사용하는 그릇, 주방 용구, 가구 등에 플라스틱을 활용하게 됐다. 전쟁 용품에서 일상 용품으로 플 라스틱의 쓰임이 전환되면서 인류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졌다.
플라스틱은 제조와 활용이 쉬울 뿐 아니라 가격도 저렴해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구나 플라 스틱 제품을 소비할 수 있게 됐다. 마침내 플라스틱이 세상을 점령한, ‘플라스틱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플라스틱을 재료로 쓰던 인류에게 어느새 ‘플라스틱 과의 전쟁’이 다가오고 있었다.

기적의 소재,

인류의 적이 되다

인류에게 플라스틱은 말 그대로 ‘기적의 소재’였다. 저렴한 비용으로 쉽게 만들 수 있고, 내구성도 좋았다. 하지만 쉽게 만드는 만큼 쉽게 쓰고 쉽게 버려졌다. 인간은 플라스틱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끊임없이 소비했다.
또한 플라스틱은 ‘불멸의 소재’였다. 플라스틱의 수명은 인류의 상상을 초월했다. 땅에 묻 은 플라스틱이 완전히 썩어 없어지는 데는 약 500년이 걸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지금 까지 세상에 나와 버려진 플라스틱의 대부분은 아직 썩지 않고 지구상에 남아 있다.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 어딘가를 떠돌며 인간과 지구 모두에게 소리 없는 위협이 되고 있다. 1960년대, 처음으로 해양에서 플라스틱 파편이 발견되면서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싹 트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플라스틱의 생산과 소비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1975년 에는 플라스틱 음료병이 등장하며 플라스틱 쓰레기의 배출량이 급증했다. 1979년에는 플라스틱 비닐백이 종이봉투를 앞질러 유럽 쇼핑백 시장의 80%를 점유했다.
1997년, 처음으로 태평양에서 거대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발견됐다. 2009년에 이르자 이 섬은 첫 발견 당시보다 2배 크기로 커졌다. 2018년에는 인체에서 미세플라스틱이 처 음 발견됐으며, 청정구역이라 믿었던 남극 바다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보이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이 지구상의 동식물,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제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오 늘날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전 세계의 중요한 공통 과제 중 하나다. 세계 곳곳에서 생분 해 플라스틱, 바이오 플라스틱 등 환경을 생각하는 대체재의 개발과 상용화에 열을 올리 기도 한다. 사실 더 쉽고 빠르고 확실한 해결책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지속가능한 지 구를 위해 이제 인류는 플라스틱을 덜 쓰고 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