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요?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인 걸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오예은 수의사는 말한다.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잘것없는 존재로 취급되는 지구의 이웃들을 구하고자
오늘도 그는 산을 오르고 메스를 잡는다.

writer. 임지영 photographer. 이도영

야생동물을 벗 삼은 유년기가 이끈 ‘구조자’로서의 삶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는 다친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와 재활을 거쳐 야생으로 복귀시킴으로써 야생동물의 생존권을 보장하며 자연 생태계를 보존하는 국가기관이다. 오예은 수의사가 이곳에 온 지는 일 년 하고도 반. 도봉산에서 자연과 더불어 보낸 어린 시절이 그의 발길을 ‘야생’으로 이끌었다.

“어릴 때 산을 마당 삼고 새소리를 노래 삼으며 다양한 야생동물을 접했습니다. 그때 가졌던 관심이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 같아요.”

야생동물센터의 동물 치료는 방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반적으로 수의사는 보호자가 있는 반려동물을 치료하지만, 야생동물 수의사는 보호자 없이 야생에서 살아가는 국내 야생동물을 진료한다. 현실적으로 센터의 계류장 수가 제한적이고 크기 또한 자연에 비해 작은 만큼 모든 다친 동물을 영구적으로 보호하지는 않는다. 치료가 최우선이고 영구적 돌봄이 가능한 관계 기관에 이첩하는 방법이 먼저 고려되지만, 방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신체가 손상된 야생동물은 안락사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구조’가 목적이지만 구조가 아닌 다른 선택을 하게 될 때 그는 공존의 의미를 아리게 곱씹는다.

“야생동물의 조난 원인은 대부분 사람에 의한 거예요. 누군가는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삶이 유지될 수 있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 사명입니다.”

그 ‘누군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 그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그는 오늘도 자연으로 시선을 향한다.

척추가 탈구되어 기립, 보행이 불가능했던 흰뺨검둥오리를 치료해
방생한 적이 있습니다. 치료부터 훈련까지 오랜 시간 지켜본 만큼
방생했을 때 먼 거리를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사람의 편의 공간 늘수록 동물의 생활권은 줄어

한국에서 자생하는 야생동물은 모두 구조 대상이 된다. 까치, 까마귀, 집비둘기, 고라니 등 흔히 유해조수로 알려진 동물도 대상이고, 개체수가 줄어 멸종 위험에 처한 멸종위기종이나 학술·관상적 가치가 높아 법률로써 보호와 보존을 지정한 천연기념물도 당연히 포함된다.

“번식 철에 미아 상태로 구조 또는 납치되어 센터에 오게 되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사고에 의한 조난 원인을 살펴보면 조류의 경우에는 유리 구조물 충돌이 가장 많습니다. 방음벽이나 창문, 유리벽 등 사람의 편의와 경관 유지를 위한 인공구조물들이 새들을 가장 많이 다치게 하는 것이죠.”

고라니 등의 포유류는 차량 충돌에 의한 사고로 센터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고 너구리들은 외부기생충 전염병에 걸려 들어오는 경우가 가장 많다. 이 두 가지 모두 ‘도로’와 관련이 있다.

“숲을 가르며 도로가 생기고 이로 인해 동물들의 서식지가 파편화되는 것을 봅니다. 하나의 생활권이던 지역이 둘로, 셋으로, 넷으로 나뉘면 여기저기 분포해 살던 동물들은 좁아진 지역에 밀집해 살면서 갖가지 전염병에 노출됩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도로를 건너다 사고를 입기도 하고요.”

가까스로 구조된 동물에 대해서는 필요한 처치나 수술을 한다. 그리고 손상이 완치될 때까지 실내의 좁은 장에서 행동을 제한하며 치료한다. 재활이 필요한 단계에서는 실내보다 좀 더 넓고 햇빛과 바람이 드는 야외장으로 이동한다. 야외장에서 비행 훈련이나 회피 등의 훈련을 하며 야생으로 나갈 수 있는 본능과 운동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자립’이 가능한 수준에 이른 동물은 마침내 자연으로 방생된다.

“척추가 탈구되어 기립, 보행이 불가능했던 흰뺨검둥오리를 치료해 방생한 적이 있습니다. 치료부터 훈련까지 오랜 시간 지켜본 만큼 방생했을 때 먼 거리를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5 곱하기 10, 야생동물 보호 위한 작은 실천

야생동물이 입은 피해는 대부분이 사람에 의한 것들이다. 마찬가지로 야생동물과 함께 공존하려는 노력도 사람의 몫이다. 오예은 수의사가 말하는 야생과의 공존, 상생을 위한 첫걸음은 ‘오 곱하기 십’의 산법(算法)을 기억하는 것이다.
“조류의 가장 큰 조난 원인은 유리 구조물 충돌입니다. 유리에 반사된 숲이나 하늘, 유리를 통과해서 보이는 숲이나 하늘을 향해 비행하다가 유리에 부딪히게 됩니다. 사고 저감 방안으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현재 5×10 cm 간격마다 점을 찍는 ‘5×10 법칙’입니다. 조류는 자신의 신체가 통과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크기 사이로는 비행하지 않는 습성이 있거든요.”
그는 센터에서 근무하며 마주치는 가장 안타까운 조난 원인으로 부적절한 사육을 꼽는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어린 동물을 관리하는 경우, 영양분 공급이 제한적이고 환경 조성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 부적절한 사육은 골격 질환, 정신적 문제, 영구적 장애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유발하는 만큼 어린 동물을 발견했을 시에는 센터 등 관련 기관에 구조 요청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규정 속도를 잘 지키고, 가능하면 1차로에서 상향등을 켜고 주행하는 것도 야생동물 보호의 한 방법입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도 야생동물의 접근을 인지할 수 있고, 야생동물도 차량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면 사고 확률은 줄어듭니다.”
현재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는 확장 공사 중이다. 매년 센터에 구조되어 들어오는 동물의 수가 증가하면서 계류 공간을 확장할 필요가 있어서다. 또한 환경부와의 협약으로 생태원 유기외래야생동물보호센터가 완공될 때까지 유기외래야생동물의 임시 보호를 맡아 그와 관련한 공사도 진행 중이다.
체코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말했다. ‘한 나라의 국민 의식 수준은 가장 약한 존재인 동물을 돌보는 그들의 태도에서 엿볼 수 있다’고 말이다.
“야생동물이 보호받는 나라가 곧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우리나라에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을 돌보고 치료하며 자연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