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의 탄생은 단순히 이동 수단의 발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 속에서 타인과 시간을 공유하는 ‘여가 문화’의 시작이었다. 19세기 후반 파리의 노동자들이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교외로 향하던 당시 시대상은 르누아르의 명화 <뱃놀이 일행의 점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햇살 부서지는 테라스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술잔을 나누던 찬란한 ‘벨 에포크(Belle Époque, 참 좋은 시절)’의 한 장면이다. 우리에게도 기차가 불러온 찬란한 시절이 있었다. 덜컹거리는 차창 밖으로 북한강의 윤슬이 부서지고, 누군가의 서툰 기타 연주가 객차 안을 가득 채우던 시절. 바로 경춘선을 타고 떠나던 MT(Membership Training)의 기억이다.
고도성장기였던 1970~80년대, 대학생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기도 하다. 1970년 19만 명이던 대학생은 1980년 61만 명을 넘어섰고, 1985년에는 136만 명으로 급증했다. 이 거대한 청춘의
에너지에게는 분출구가 필요했다. 그렇게 학과와 서클 단위의 ‘신입생 환영회’와 ‘1박 2일 MT’는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대학 문화의 필수로 자리 잡았다.
당시 수도권 대학생들에게 MT의 행선지는 크게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었다. 서쪽으로는 을왕리, 동쪽으로는 대성리와 강촌이 있었다. 특히 경춘선을 타고 동쪽으로 떠나는 여정은 서울의 대표적인 근교 여행 코스이자 청춘과
낭만의 대명사였다. 1989년 발표된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는 그 시절의 정서를 대변한다. “조금은 지쳐 있었나 봐”로 시작하는 노래 속 주인공은 사실 춘천까지 가지 않았다. 당시 탔던 비둘기호가 너무 느려
결국 강촌에 내려버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사실 MT를 떠나던 대학생들이 가장 애용했던 기차는 통일호였다. 비둘기호보다 빠르고 무궁화호보다 저렴했기에,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다.
기차 여행이 시작되는 청량리역 광장에서부터 설렘은 피어났다. 누군가는 시계탑 아래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아는 멜로디가 들리면 생면부지의 옆 과 학생들도 화음을 넣던 기묘한 일체감이 있었다. 잔뜩 멋을 부린
남학생들이 타교 여학생들과 수줍은 시선을 교환하던 곳이기도 했다.
춘천으로 향하는 통일호에는 그 시절 특유의 낭만이 서려 있었다. 이 기차의 진짜 매력은 ‘수동’의 미학에 있었다. 창문 하단의 잠금쇠를 눌러 위로 밀어 올리면 북한강의 싱그러운 바람이 객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다만 기차가 터널에 진입할 때면 매연을 피하기 위해 다급히 창문을 내려야만 했다. 지금의 경춘선은 복선 철로지만, 통일호가 달리던 시절엔 단선이었다. 구불구불한 북한강 물줄기를 따라 기차도 속도를 늦추고 느릿느릿
숨을 골랐다. 통일호 제일 뒤 칸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레일을 바라보며 멀어지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기차 여행이 주는 낭만이었다.
잔뜩 신이 난 학생들은 비좁은 객차 안에서도 90도 직각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노래를 부르고 게임을 즐겼다. 워낙 좌석이 좁아 맞은편 사람과 무릎이 닿기도 했지만, 그땐 그게 불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에 담아두었던 학우와 마주 앉았다면 그것은 고마운 우연이었다. 대성리, 청평, 강촌 등 목적지에 도착해 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면 민박집 주인들이 그들을 반겼다.
그곳은 온통 봄이었다. 아직 고교생 티를 벗지 못한 신입생도, 어딘지 늙수그레한 느낌의 복학생도 모두가 봄이었다. 그때는 신입생과 복학생의 차이가 꽤 크게 느껴졌지만, 세월이 지나 돌아보니 모두가 그저 눈부신
20대의 한복판에 서 있었을 뿐이다. 좁은 민박집 방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선배의 무용담을 들으며 밤새 소주잔을 기울이고, 캠프파이어 불꽃 앞에서 유치한 진실 게임을 하던 시간들. 대단히 건설적이지는 않았으나
서로의 민낯을 확인하며 ‘우리’가 되어가던 청춘들의 서툰 의식이었다.
통일호는 2004년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지나며 MT 문화 역시 큰 변화를 맞았다. 강압적인 술 문화나 선후배 기강 잡기 같은 구시대적 폐단이 사라진 것은 다행이지만, 기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 함께 여가를 즐기던 풍경마저 희미해지는 것은 못내 아쉽다. 사실 1분 1초를 아껴 ‘갓생’을 사는 지금의 청춘들에게 통일호를 타고 MT를 떠나던 문화는 그저 ‘시간 낭비’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이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는 함께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젊음의 객기가 불러온 어설픈 실수는 그저 웃어넘기고, 실패와 방황조차 청춘의 한 과정으로 여길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빠른 변화의 시대에 돌이켜 보면 참으로 무용하고, 한편 다정한 시간들이었다. 비록 속도에 밀려 통일호는 멈춰 섰지만, 조금은 방황하고, 또 조금은 실패해도 괜찮았던 그 시절의 여유만큼은 세대를 넘어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