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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위를 달리던 강철 요새 열차포

철도를 떠올리면 대개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이동 수단이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철도는 승객과 화물만 운반하지 않았다. 거대한 무기, 더 정확히는 철로 위를 달리는 초대형 대포가 존재했다. 열차포(Railway gun)가 그 주인공이다.

화포에 바퀴가 달리다

화약 기술이 발전하면서 12세기 무렵 등장한 화포는 시대마다 형태를 바꾸며 진화해 왔다. 지금도 핵심적인 국방 전력인 화포의 발전사에 철도는 뜻밖의 방식으로 등장한다. 바로 열차포다.

열차포는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19세기 전장의 요구가 낳은 필연에 가까웠다. 요새와 방어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군사 강국들은 더 큰 대포를 원했다. 문제는 포가 커질수록 무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는 것. 당시의 열악한 도로는 수십 톤에 이르는 화포를 감당하지 못했고, 이동 자체가 곧 전력 손실로 이어졌다. 화력과 기동력은 반비례한다. 사거리와 파괴력을 끌어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구경을 키우고 포신을 길게 만드는 것이지만, 그 대가로 무게가 급증한다. 무거워질수록 이동은 느려지고, 전선 변화에 즉각 대응해야 하는 전쟁터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여기서 해결사로 떠오른 것이 철도였다.

단단한 노반 위에 깔린 강철 선로는 하중을 효율적으로 분산해 대형 무기를 지탱할 수 있었다. 덕분에 철도는 옮길 수 없던 화력을 움직일 수 있는 화력으로 바꿔 놓는다. 실제로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의 새비지 역(Savage’s Station) 전투에서 인류 최초의 열차포가 실전에 등장했고, 열차포가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맞은 시점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의 파리 대포다. 120km 밖에서 파리를 타격한 이 무기는 전선이 고착된 참호전 상황에서 더 큰 화력을 더 멀리 옮겨 쏘기 위한 시도의 정점이었다. 철도는 그렇게 거대 화력과 전장 기동성 사이를 해결해 주었다.

철도가 준 해답, 철도가 만든 한계

열차포가 등장하자 프랑스·독일·영국 등 주요 국가들은 앞다퉈 초대형 열차포를 제작해 전선에 투입했다. 초기에는 240~280mm급이 주류였지만, 곧 355mm급 거포가 등장하며 ‘더 크고 더 멀리’라는 경쟁이 가속화됐다. 구경이 커질수록 열차포는 거대해졌고, 그 극점에 선 존재가 바로 독일의 구스타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슈베어 구스타프(Schwerer Gustav)는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무력화하기 위해 설계된 열차포였다. 무게는 약 1,350톤. 당시 주력 전차 수십 대를 합친 것보다 무거운 수준이었다. 높이는 약 12m, 포신 길이만 30m를 넘겼다. 너무 무거워서 일반 단선 철로로는 하중을 버티기 어려웠고, 특수 복선(레일 4개) 위에서 수십 개의 바퀴로 하중을 분산해 움직일 수 있었다. 탄약도 규모가 달랐다. 포탄 한 발의 무게가 약 7톤으로, 성인 아프리카코끼리에 맞먹는 수준이다. 이 한 발을 발사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움직여야 했다. 실제 사격을 담당하는 포병 대대 약 500명뿐 아니라 거대 포를 조립하는 공병, 항공 공격을 막는 대공부대, 선로를 부설·정비하는 인원까지 합치면 수천 명이 오직 포 한 문을 위해 동원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포 자체도 너무 커서 수십 량의 열차로 분해 운송해야 했고, 전선 인근에서 재조립하는 데만 3주~한 달이 걸렸다.

구스타프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전장은 세바스토폴 요새 전투였다. 구스타프는 약 30km 밖에서 철갑탄을 발사해 천혜의 암반 아래 지하 30m에 숨겨져 있던 소련군 탄약고를 단숨에 격파했다. 그러나 승리의 환호는 오래가지 않았다. 화력은 압도적이었지만, 기동력이 치명적이었다. 선로 위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는 제약은 전장을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하늘을 장악한 폭격기에 열차포는 너무나 쉬운 표적이었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열차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더 가볍고 더 멀리 날아가는 미사일, 그리고 전략적 타격이 가능한 폭격기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